[에세이―이옥자] 친구는 손수건과 같다
우리 마을 인근에 있는 ‘그 집’은 늘 조용했다. 나무대문 옆의 한정식집이라는 작은 간판에 끌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응접실은 예사롭지 않은 고급 소파로 장식되어 있다. 잠시 후 건장한 남자가 나타났고,나는 조심스럽게 모임의 성격을 말한 후 음식 가격을 물어 보았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낮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음식점에서 왜 낮에는 음식을 팔지 않을까’ 생각하며 야릇한 분위기에 밀려 나왔다. 뒤돌아본 집은 단아하고 목가적이다. 그러나 밝고 분주한 도심에서 한낮의 고요와 음습함이 이상했다.
매스컴에서 그 집을 보았을 때,찜찜한 분위기의 정체는 풀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전·현직 대통령의 아들들이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비밀요정이었다. 한정식집 간판은 출입에 의심을 피하려는 목적이고,야간만의 영업은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는 인사들의 사교와 향응,밀접 장소였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과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같은 요정을 이용한 일은 우연이라고 하나,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그 집 주인의 필연적 수완의 결과일 것이다. 그는 권력의 후면에는 이권을 좇아 줄을 대려는 무리들이 몰려들어 술자리라는 향락의 난장판에서 지지와 기반 다지기의 탑을 쌓는 작업이 필수라는 불멸의 공식을 정권마다 수단껏 적용시킨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 집 대문은 굳게 닫혀 있고,사람의 그림자도 얼씬 않는다. ‘폼페이를 보면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고 한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2천여년 전 로마인의 쾌락적 모습이 그대로 화석이 되었듯이,그 집은 부질없는 권세와 향락의 화석이 되어버린양 이제는 밤에도 불이 꺼져 있다.
“친구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낀다.”
밤이면 그 집에서 황태자로 군림하던 사람이 법정에 서며 던진 한 마디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게 한다. 실세라는 허상에 기대어 기회와 욕망을 좇는 사람들 사이에서,막역한 친구를 지지세력으로 만들려던 사람들 - 그 친구관계는 악연의 사슬이며 불운이 예측된 엮임이었다.
순수예술은 독선에 빠지기 쉽고,대중예술은 퇴폐로 흐르기 쉽다. 현실이 이 공식을 입증하듯,영화와 드라마,가요는 친구의 의미를 왜곡되게 변화시키고 있다.관포지교(管鮑之交)는 멀다해도,신의와 의리마저 코웃음이요,라이벌의식과 사랑쟁탈전,반목의 대상과 배신의 도구로 친구를 등장시킨다. 이것은 전염성이 강한 정신적 퇴폐행위다.
누군가와 “1m 밖에는 사람이 들끓어도 슬플 때나 기쁠 때 포옹할 사람은 없다”며 친구 부재의 시대를 개탄한 적이 있다. 단 한 명의 진실한 친구만으로도 인생은 풍요로울 수 있다.
친구는 요즘 사람들이 잃어버리는 것 - 손수건과 같다. 쉽게 살 수도 있으나 오래 간직하기는 쉽지 않다. 간수하기 귀찮아서 일회성으로 휴지를 사용하면 주변에 쓰레기만 쌓일뿐,세상에 내 손수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손수건은 오래될수록 부드럽고 편안해져 언제 어디서나 땀을 닦아주고 눈물도 받아준다. 반둣하고 고운 모습으로 곁에 머물며 조용히 나를 살핀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10년이 넘은 손수건을 향내나는 비누로 빨아 다리며,나는 늘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꾼다.
이옥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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