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작은 집/도종환
씀바귀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아카시아꽃이 피워 내는 마지막 다디단 향기가 머리 위를
하얀 천 자락처럼 맴돌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안동에 다녀
왔습니다.조탑리에 있는 선생님 집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집입니다.다섯 평짜리 흙집.
<몽실언니>와<강아지똥> 같은 휼륭한 작품을 쓰신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의 가장 큰 어른은
평생 가장 작고 초라한 집에서 살다 돌아가셨습니다.우리는 너무 큰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댓돌에는 선생님의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습니다.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
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추녀 밑에는 씨앗으로 쓰려고 보관해 온 옥수수 여남은 개가
매달려 있었고 평상에는 보리 건빵과 뻥튀기 과자 한 봉지가 있었습니다.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먹고 있습니다.그러면서도 더 맛있다는 것, 더 기름진 먹을거리를 차지하고있습니다.
선생님의 집 뒤에는 보랏빛 엉겅퀴꽃이 가득 피어 있었는데 그중 한 송이는 마루 끝에 와서
주인 없는 빈 마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집은 그 엉컹퀴꽃만으로도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꽃,너무 많은 것으로 집 안 팎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혼자 사시는 동안 쥐가 들어와 옷 속에서 잠을 청하면 그냥 거기서 자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혼자 주무시기에 무섭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작고 낮은 삶을 선택하신
선생님의 양쪽에는 늘 하느님이 함께 계셨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 . 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새들도 침을 뱉고 가고 흙덩이조차도 외면하는 강아똥도 고운 민들레꽃을 피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가시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 앞으로도 계속 생기게 될 인세와 책을 통한
수입 전부를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오직 내 자식 내 가족에게만 물려주러고 끌어안고 있는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내가 가진 것도 소유하지 않고 한 줌 재가 되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을 추모한다고 몰려가 뜨락의 민들레꽃만 짓밟아 놓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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