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에세이와 수필은 다른가? / 이향아
에세이와 수필은 다른가? / 이향아
몽테뉴가 에세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16세기 말, 자신의 견문이나 감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고 이를 ‘las essays'라 이름 붙였다. 즉 수상록과 같은 내용이었는데 그 뒤 영국의 베이컨이 ’the essays'에 의해 확고하게 자리매김 되고 찰스램의 ‘essays of elia'에 이르러 고정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 가운데 ‘일신 수필(馹迅隨筆)에서 유래되었다. 연암 나이 44세, 1780년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잔치의 축하사절로 가는 삼종형인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북경에 갔을 때 쓴 일기문과 기행문 형식의 글이었다. *일기문 기행문 형식의 글을 왜 수필이라고 했나? 남송 때 홍매가 쓴 <용제수필>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몽테뉴가‘las essays'를 펴 낸것이 1580년, 홍매가 ’용제수필‘을 묶어 낸 것이 1202년, 명칭의 역사로 치면 수필이 에세이보다 380~400년 먼저다. 물론 이전에도 수필의 성격에 부합하는 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있었다. “예’‘ 마아커스 오델리어스의 명상록, 풀푸타크의 영웅전, 세네카의 행복론, 플라톤의 대화편 등은 장르상 에세이에 해당 되는 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이규보의 백운소설도 수필적인 성격의 글이었다.
우리를 포함한 동양권의 수필과 서양의 에세이는 그 출발이 비슷하고 문학성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양자를 구분하려는 주장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 요지는 수필은 에세이보다 격이 낮다는 것. 즉 우리 수필이 신변잡기에 가까운데 반해, 에세이는 소 논문적 성격을 띠는 객관적 요소가 강한 글로써 질적 수준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에세이와 수필은 정말 다른가? 다르다면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1) 겸손의 표현이다.
몽테뉴의 ‘las essays'의 서문을 보자
0. 성실하게 쓴 글이다.
0. 내 집안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말해보려는 의도이다.
0. 그대를 위한 봉사나 내 영광을 도모하지 않는다.
0. 내 생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별것 아닌 나를 보아 달라.
0. 내 자신이 바로 내 책자의 재료다.
용재수필의 서문을 보면,
‘나는 게으름이 버릇이 되어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이 나면 그때 그때 기록하였을 뿐, 그 앞뒤를 가려 다시 정돈하지 않아 명목을 달아 수필이라고 한다’
* 두 서문의 공통점은,
a. 보잘것없는 글이라는 것
b. 사소한 글이라는 것
c. 꾸밈없는 글이라는 것
d. 필자에게 결점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의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는 고백문학인 동시에 자조문학이며 형식이 자유로운 글임을 증명하고 있다. 공통점 a b c는 모두 작가에게서 보이는 겸손의 모습이다. 최선을 다하여 진수성찬을 마련해 놓고도‘변변히 차린게 없으니’ ‘소찬’이니 과장하여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겸손은 장르의 이름을 따서 “따를 隨와 붓 筆자를 엮어서 수필이라 하고 ‘붓 가는 대로 쓴 글’임을 강조한데서 극대화 되었다.
몽테뉴나 홍매의 서문에서 우리는 그들의 이중성, 겉으로는 겸손하게 움츠러들고, 속으로는 자부하는 면모를 상상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찰스램은 ‘essays of elia'의 서문에 해당하는 헌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 우리는 찰스램처럼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필자가 뜻한 바 그대로로 받아들이시되 모든 것을 괴팍하게 아무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하지 마시고 식후의 담화를 들으시듯 선의의 해석을 내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은 무분별과 거기에 따르는 불완전을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 넉 잔 가량의 술을 마신 뒤에 우연히 지껄인 헛소리를 후일에 따지실 목적으로 기억해두시는 일이 없는 우의가 두텁고 현명하신 독자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라는 등등.
*이 서문에서 찰스램이 독자에게 요구한 것은
0. 괴팍하게 이해하지 말고 선의의 해석을 내려 달라.
0. 불완전을 너그러이 봐 달라.
0. 필자의 실수를 따지지 않는 우의가 두터운 독자에게 바친다.
0. 솔직한 해석을 내려달라.
0. 잘 쓴 부분에 대해선 칭찬해 달라.
0. 비판의 말을 듣지 않겠다.
0. 비판하는 별종의 인사들도 내 책을 사주기 바란다.
즉 솔직한 해석을 내려달라고 하면서도 비판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별종 인사들’로 간주하고 있다.
* 새로 발간된 작품집에 호평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모습, 그것이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를 받음은 물론이고 장안의 지가를 올릴만큼 상품으로서도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찰스램처럼 말하지는 않는다.
3) 그것은 정서의 차이다.
에세이나 수필은 비슷한 바탕에서 출발했고 거기 담기는 내용 또한 다르지 않다.
에세이에도 formal essay(inpersonal essay), informal essay(personal essay)가 있고 수필에도 重수필(formal essay) 輕수필(informal essay)이 있다. 같은 에세이에도 베이컨적 몽테뉴적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작가의 개성이 불러오는 각기 다른 형식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와 수필에 분명한 다른 면이 있다면 , 그것은 서양인의 정서와 우리의 정서의 차이, 서양인의 성정과 우리의 성정의 차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은 행동적 분석적 객관적 이지적인데 반해 동양은 명상적 통합적 주관적 감성적이다. 서양이 코스모스적 질서요 이성이라면, 동양은 카오스적 혼돈이라고 할 수 있는 흥건한 情이다. 이러한 정서와 성정의 차이가 에세이와 수필의 내용을 좌우했을 것이다.
* 우리의 춘향전과 로미오와 줄리엣이 같은 러브스토리지만 서로 다른 것처럼. 같은 효심이지만 안티고네와 심청이 다른 것처럼 동서양의 문화전반, 예술전반의 특징적 구별을 이해해야 함. 우리 수필의 질적 수준이 신변잡기나 감상문 잡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견해는 스스로 우리 수필을 비하시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필은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느냐 아니면 개인적이고 신변잡기적인 감상이나 수상에 머무르게 하느냐 하는 것은 각 수필가 개인의 수준과 취향, 능력에 맡길 일이지 우리 수필 전반에 둘러씌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수필 중에도 서양의 파스칼이나 베이컨을 능가하는 수필이 얼마든지 있으며 서양의 에세이에서도 시시콜콜하고 사사로운 개인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용도 허다하다.
- 수필시대 2006.9/1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