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 시집『배꼽』(창작과비평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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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3급 지적장애인이 부산시의회 본회의를 방청하려다 포기했다. 시의회 방청안내문에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방청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흉기 등 위험한 물품을 갖고 있는 사람과 술에 취한 사람 등과 함께 ‘정신이상자’의 방청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의회 방청뿐 아니라 박물관과 도서관, 복지관 등 상당수 공공시설에는 지적장애인의 출입을 조례로 막고 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6년이 되었건만 각 지자체의 관련법규에는 여전히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장 뿔따구 나는 일이 그들을 ‘정신이상자’라고 모욕을 주는 내용이다.
이토록 세상의 모서리에서 안간 힘으로 살고 있으니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면 어느 정도 상태일까. 한마디로 혼자 휠체어에서 화장실 양변기로 옮겨갈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아주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들에겐 난이도 높은 묘기에 가깝다. 일단 1∼2초 정도 선 뒤, 제자리에서 무려 180도를 돈 다음 위치를 잘 맞춰 엉덩이를 변기에 얹어야 한다. 기마 자세까지 취해야 하는 대변 뒤처리는 말할 나위 없다. 이 지경이니 나돌아 다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집에 혼자 있다보면 여러 이유로 사고사의 위험이 매우 높고 지난해에도 줄초상이 이어졌다.
시인이 키보드 상단의 특수기호를 아무렇게나 두드려 번역한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쩌면 그 눈물은 내가 ‘정상’임을 안도하는 감읍의 눈물과 은밀하게 뒤섞인 알량한 액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 알지 못하는 기호 음절 사이에는 숱한 주름과 너울, 경련과 울부짖음, 서러움과 노여움, 그래 날개 짓도 박혀 있을 것이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저릿하고 먹먹해져 오래 하늘만 쳐다보았다. 죽음이,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만든 그 날개가 진짜로 부러울 수 있다니...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