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에서 벗어나는 즐거움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허리를 깊게 숙여 면발을 물어 올리는 동물적인 모습, 그게 좋다. 세수도 안한 얼굴에 자장 묻은 입술, 헝클어진 머리칼, 눈가림을 하려고 대충대충 정리한 방과 대충대충 입고 앉은 옷. 아무리 생각해도 희극적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갖추어 입고 출퇴근을 하는 내 일상에 대한 지겨움. 그런 격식의 지겨움으로부터 매우 솔직하게 벗어나게 해 주는 게 시켜 먹는 자장면이다. 자장면이 눈부실 만큼 신속하게 배달되지 않는다면 이런 희극적 행복을 맛볼 수 없다. 신속하게 달려오는 자장면과 거기에 대응하는 수선과 법석. 그 속에서 솔직한 본능이 살아난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자장면을 먹거나, 볏단을 깔고 앉아 밥을 먹는 일은 분명 문명의 격식에서 벗어나 있다. 거기에 오히려 순수한 생명감이 있다.'
_권영상, 《뒤에 서는 기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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